www.foxnews.com/opinion/was-the-unabomber-correct
테드 카진스키(aka 유나바머)는 1978년~1992년 폭탄으로 23명을 죽거나 다치게 한 혐의로, 1998년 정당하게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어느 누구도 그의 테러리즘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묘사된 그의 생각들은 무시할 수 없으며, 우리 사회가 자율성을 침식하는 정치적 힘과 기술에 의한 개인의 무력감을 향해 돌진해갈 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폭탄테러를 멈추겠다는 카진스키의 제안에 따라, “산업사회와 그 미래”는 1995년 9월 19일,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에 의해 출판되었다.
지금도 살아있는 카진스키는, 미국과 세계의 산업화로 인해, 그리고 기술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을 실천하는 능력을 잃게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정치적 “좌파”들이 기술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보았다. 그들의 “좌파”적 이념을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인간을 통제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좌파”들이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무기력감을 거대집단에의 소속감과 사회에 대한 통제를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카진스키가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정확했다.
수억명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자아도취에 빠져 스스로를 TV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카진스키가 본다면, 나는 그가 자신이 옳았음을 더욱 확신하리라고 장담한다.
평범한 미국인들이 마치 자기가 스타라도 된것마냥 자신의 일상생활을 “트윗”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는 자아를 자극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에 감탄할 것이다.
일상적인 GPS 사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지도 상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실제로는 현실에서의,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감각을 침식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알고는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새롭게 등장한 구글 글래스는 사용자들로부터 세상을 분명히 바라보는 능력을 빼앗아갈 것이다. 카진스키는 차라리 감방의 쇠창살과 고독함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는 적어도 이건 현실이기라도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인터넷을 도구삼아 대선에서 승리한 버락 오바마의 정부가 미국 대중을 도청하고, 이메일과 휴대폰을 감시하고, 그들의 법률적 권리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무장해제하는 모습을 카진스키가 본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미국인들이 (바로 그가 예측했던, 기술과 좌파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인간 삶의 핵심인 그들의 개인성과 자율성이 위험에 처해있음을 알게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것이다.
유나바머가 한 짓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는 틀렸다. 자기 생각에 주목을 끌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함께 그의 생각까지 가둬버렸다. 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 사이에서, 언급불가능한 주제가 되었다.
글쎄, 나는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올바름을 추구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연쇄살인범 테드 카진스키의 저서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읽어야할 시간이다.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와 나란히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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